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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총성

  • 작성자
    박검진
  • 작성일
    2011-11-08 18:10:31
  • 조회수
    2267
 
박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흘렀다. 불과 얼마전에 발생한 사건 같건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정권도 많이 바뀌었다. 서슬퍼런 권력을 휘두르던 전두환마저도 차디찬 철창 신세를 면치못했다. 역사란 기록되기 마련이고,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인데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그때의 진실은 아직도 모른다.

김재규부장이 왜 대통령을 시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아직도 없는 것 같다.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거나 대부분 자연사했다. 그때 그사건을 군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에 우리가 신문지상으로 알고있었던 것은 김재규가 개인의 야욕 때문에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신문검열이 심했던 때이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드릴 수 만은 없다.

김재규는 정말 개인적인 야욕 때문에 유신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었을까? 김재규가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최후진술하는 것을 다시 들어보니 개인의 야욕 때문이라기 보다는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하여 혁명을 했다는 것에 믿음이 간다. 사람은 죽을 때가 가장 정직하다고 한다. 김재규의 육성은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자신보다는 자신을 따른 부하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죽음에 직면해서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에 박흥주대령은 현역 대령이면서 김재규를 보좌했는데, 법정 마지막 진술에서 재판장이 물었다. 다시한번 10.26사태가 발생하면 그때도 상관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박대령은 의연하게 말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저는 상관의 명령에 따를 것이다. 이 말에 법정 내는 숙연해졌다. 군인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마지막까지 보여준 것이다.  

박대령은 죽기전에 두딸과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자기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딸에게는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니 꿋꿋하게 살라고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하는 진짜군인의 모습이었다.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애비로서 마지막 말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한다고 가르쳤다. 그말이 가족들에게는 유언이 되었다. 정말 눈시울이 붉어진다.

박대령은 실제 달동네 12평짜리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라는 막강한 권력 밑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다. 장래 육군참모총장감이었다고 동료들은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총살형을 당하면서도 그는 의연하게 대한민국만세! 대한민국육군만세!를 외치면서 죽었다고 한다.

부창부수라고 그의 아내도 그가 죽기 전에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 내용에는 법정에서 의연한 당신 모습을 보니 울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이들과 자신은 남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의연한 모습을 마지막까지 남편에게 보였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남편에게 저세상에서도 다시 아내로 맞아줄 것을 부탁했다.

정말 그 남편에 그 아내다. 후에 전두환이 박대령의 충성심과 청렴성에 크게 탄복하여 그 아내를 도와주려고 했으나 그 부인은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남편을 복권시켜줄 것을 부탁했으나 결국 복권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야할 사건이 박대령과 그의 아내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보면서 결코 잊혀지지가 않는다. 만약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향하여 총을 쏘지 않았다면 국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재규라는 사람이 정말로 대한민국민주주의를 위하여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쏜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 난 그것을 믿고
싶다. 김재규의 육성을 믿고 싶고,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죽은 사람들을 믿고 싶다. 진짜군인의 길을 간 박흥주대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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